- '살아있구나'
차가운 감촉이 전신을 타고흐르는 것을 느끼며 소년은 깨어났다.
잠시 몸을 일으켜보려던 소년은 전신에 타고 흐르는 고통에 움찔대다가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 '추워'
입안은 핏물로 가득하다. 고개를 돌려 핏물을 퉤- 뱉어내다가 핏물의 비릿내에 헛구역을 잠시했다. 입안도 얼얼하고, 눈도 뜨이질 않는다. 아마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주지 않는다면, 곧 죽을거 같다는 생각이 소년의 머리에 스쳤다.
- '눈을 떠야해'
힘겹게 미간을 찌푸리던 소년은 겨우 눈을 떴다. 실눈을 뜬 그에게 보인 것은 너무나 맑은 하늘의 태양이었다. 뭉개구름, 새들의 지저귐, 부드러운 소릴내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의 소리, 그리고 물소리. 소년은 겨우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고, 자신이 쓰러진 곳이 강가라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 '목말라, 아까 물을 괜히 뱉었네'
우습게도 강가 옆에서 목이 마르다니, 가볍게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꿈쩍할 힘도 없는 소년은 가만히 누워있을 뿐이었다. 주변이 가물가물하게 보인다고 느껴진 순간, 그는 다시금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 1 . 렌 -
렌에게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번째, 상대를 잘 파악할 것.
두번째, 그만둘 때를 잘 파악할 것.
언뜻보면 잔뼈 굵은 전사의 싸움지침같은 저 원칙은 사실 렌이 여자를 꼬실 때의 원칙이다. 꼬실려는 여자를 확실히 파악할 것! 그리고 그 여자가 자기에게 너무 넘치거나 눈길을 안줄경우 그냥 포기할 것! 이것이 렌의 지침이다. 렌의 여자 꼬시는 재주는 특출나서 그의 유명한 바람끼에도 불구하고 그와 데이트를 원하는 처녀들이 넘쳐날 정도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여자를 바꾸어대는 렌을 보면서 친구들은 부러워하고, 지나간 여자들은 한숨을 쉰다. 렌은 한번 사귀었던 여자를 다시 사귀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렌에 대한 어른들의 평가는 비교적 호의적이다. 이상하게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렌이 사는 마을 사람들과 주변 마을 어른들은 렌을 좋게 생각하고 있다. 매주 여자를 바꾸어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여자들에게 수작을 부려도 어른들은 넉살좋게 웃으며 렌의 연애를 응원했다. 게다가 어떤 부모들은 자기 딸과 렌이 사귀는 것을 적극 지원하기도 한다. 렌과의 연애가 끝난 여자애들이 울면, 몇몇 어머니들은 자기 딸을 부드럽게 위로했으며 자기 딸이 어른이 되었다고까지 말하곤 했다. 남들이 들으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렌은 권력자의 아들도 아니고, 난봉꾼도 아니다. 그는 로맨티스트였다. 마을 사람들과 주변 지역 사람들이 렌의 연애를 좋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신사라는 것이다. 렌은 죽을 힘을 다바쳐 여자의 마음을 얻고 그 여자를 위해 짧게는 1주일, 길게는 2주일동안 꿈과 같은 연애를 맛보게 해준다. 여자로서 연애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꿈, 그것을 1~2주 동안 상대 여자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렌은 한 여자와 연애를 하기로 결정하면 1주일간은 모든 것을 바친다. 여자를 감동시킬 타이밍과 사건들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 내어 여자의 마음을 충족시킨다. 그리고 1 주일이 지나면 그 사랑을 실행할 수 있게 해준 여자에게 정식으로 감사한 다음, 다른 상대를 찾아 떠난다. 18세의 어느날 렌이 이 짓을 시작했을때, 사람들은 2~3년 동안 렌을 무시하고 욕하고 협박했다. 여자애들도 울며불며 매달리고, 헤어진 여자들이 렌을 저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렌의 존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렌은 첫사랑의 통과의식이다. 그는 만인의 연인이며, 모든 소녀들을 여자라는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존재이다. 평생 한번뿐이 없을지도 모르는 연애의 달콤함을 던져주고, 스스로를 여자라고 알게해주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시 몇년이 지나고 렌은 소녀들의 열망이 되었다. 렌에게 선택받아 그의 사랑을 1주일간 받는다는 것은 이제 자신은 소녀가 아니라 여자라는 증거였고, 마을사람 모두에게 자랑할 수 있는 성년이라는 의미가 생긴 것이다.
그러한 확고한 신뢰가 생기게된 것은, 렌이 절대 여자의 몸을 건들지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였다.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게 렌은 여자를 욕망의 대상으로 보지않고 사랑의 대상으로 봤다. 순수하게 사랑하고, 순수하게 여자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렌의 기행이 더욱 신뢰를 받게된 것은 렌을 담당했던 사제가 마을 사람에게 흘린 이야기때문이었다. 렌은 마법의 힘으로 자신의 정신 중, 성적욕망을 봉인했다. 렌은 진정한 사랑을 만나면 그 욕망을 해제할 것이며, 그 해제의 주문은 신전의 깊은 곳에 엄중한 관리하에 봉인되어 있다고 사제가 말한 것이다. 즉, 렌이 여자를 육체적으로 접촉하려면, 사제에게 가서 허락을 받은 뒤 주문으로 정신의 봉인을 풀고, 그 다음에야 여자와 육체적 결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렌에 대해 걱정하는 마을사람에게 해주며 사제는 유쾌히 말했다.
- "렌에 대해선 걱정말게. 렌은 결혼서약을 할 때까지는 절대 봉인을 풀지않기로 나와 약속했다네, 당연히 나도 렌이 결혼할 때까지는 봉인을 풀어주지 않을 생각이야,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다니 기특하지않은가? 누가 그 행운의 아가씨가 될지 궁금하구만, 하하하"
렌은 상당히 매력적인 미남형의 스타일이었다. 충분히 아가씨의 마음을 설레게할 정도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고, 마을 어른들이 인정하는 성실함이 있었으며, 치안경비대장과 막상막하 실력을 겨룰 정도의 검 실력도 있다고 알려졌다. 그야말로 마을의 왕자님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한 렌에게 사랑을 받는 1 주일동안 아가씨들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은근히 렌의 정식 여자친구가 되길 바랬지만, 아직까지 렌의 마음을 붙잡는 아가씨는 없었다. 렌은 여전히 만인의 연인이고, 사랑스런 바람둥이였다. 그게 바로 렌이다.